キャンドルナイトワンピースブログ

    2010年12月21日

    各地で歌われる「故郷の春」

    今年の平和の火のキャンドルナイトでは、火に韓国の童謡「故郷の春」が歌われています。

    朝鮮半島から渡ってこられた方々は、最期の時まで頭の片隅に故郷の懐かしさを持たれていたでしょう。

    火に宿る命のそんな心に想いを馳せながら。


    さきほど、NHK広島放送局から18時30分から19時の間にこの「故郷の春」を1曲流せるかもしれない
    と連絡がありました。

    冬至である明日は日本と韓国で22会場でキャンドルナイトが開催されます。

    日本と韓国、国境を越えて、心で歌を捧げてまいります。


    12月11日大阪 Kackey@dabigtree Live


    12月18日大阪 採火セレモニー


    12月18日新潟 採火セレモニー


    12月19日和歌山 採火セレモニー


    posted by キャンドルナイトワンピース実行委員会 at 19:40| Comment(0) | 奮闘記 | このブログの読者になる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한국피폭에 관한Q&A

    先日アップした在韓被爆に関するQ&Aをテグの岡田さんがハングルにしてくださいました。

    韓国の方にも在韓被爆について知っていただければと思います。


        한국피폭에 관한 Q&A
    (참고; 히로시마를 가지고 돌아온 사람들 이치바 준코(市場 淳子) 씀)

    대략적인 정보임으로 자세히는 각자 자료를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피폭에 관한 Q&A.pdf


    Q. 합천은 어디에 있는지요?

    A. 대구까지 차로 1시간, 부산까지는 2시간20분 거리에 있습니다. 천 미터 정도의 산이 솟아있는 「한국의 티벳」이라고도 불리 울 정도로 높고 험준한 산세에 둘러 쌓여있습니다. 그래서, 합천 내에는 평야로 불리 울 땅이 없고 유일하게 합천내의 동쪽에 형성된 초계분지를 평지라 볼 수 있습니다.
    ハプチョンの位置.JPG


    Q. 왜 합천에 한국피폭자가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까?

    A. 일본에 의한 조선식민지배가 시작 되고 얼마 안 된 시기에 히로시마에 건너간 몇몇 사람이 고향인 합천의 사람들을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한국피폭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식민지시대에 일본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에 건너간 친척이나 지인의 초청장을 받아 그것을 합천의 경찰서에 가지고 가서 도항증명서등을 발행 받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확실하지는 않으나 다음과 같은 증언이 있습니다.

    「세간에서 들은 이야기는 일찍이 히로시마에 건너가서 사업에 성공한 합천 출신이 자신의 고향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이 두 손을 들어 반기며 히로시마로 건너가게 된 동기라고 합니다만...」

    「할머니가 어렸을 때 해주신 말씀입니다만 3.1운동 때 체포된 사람들 중에 합천에서 히로시마의 형무소로 보내진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이 형무소에서 나온 다음이겠지만 합천의 사람들에게 「히로시마는 살기 좋은 곳이다」라고 말을 전해 듣고 합천에서 히로시마로 건너 간 사람들이 몇 있고 계속해서 히로시마로 건너가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Q. 왜 합천출신의 사람들은 히로시마로 건너갔을까요?

    A. 합천에서 히로시마로 건너간 것은 거의 먹고 살기 위해서 건너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원래 농토로 적합하지 않은 지역 이였으나 일제시대의 식민지정책 아래 일본을 위한 쌀이나 목화재배를 강요당하고 또는 천재지변도 더해져 가난한 덕에 생활이 되지 않아 할 일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케이스가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 도일 목적
    渡日理由.JPG

    ✴서울, 경기, 호남, 합천 부산에 관해서는 1979년에 「한국협회여성연합회」가 경북에 관해서는
    1979년 협회와 시민회가 행한 조사결과를 가지고 호남과 경남은 1977년 협회의 등록 겸 조사표를 기준으로 집계.


    Q. 합천에서 건너간 사람들은 히로시마에서 어떤 생활을 했나요?

    A. 일은 육체노동에 종사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 임금차별도 있어 보통 일본인의 반 정도의 수입으로 또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더욱 임금이 낮아 중노동인 토목공사나 폐품 회수 등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주거지는 입지조건이 나쁜 장소나 피차별 부락지역의 인접한 곳에 모여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피폭자들에게「당시 생활에서 곤란했던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활고」를 드는 사람들이 많았고 다음으로는 「차별」「식량부족」「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를 드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Q. 한반도 출신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피폭으로 사망한 것인지요?

    A. 피폭자의 열 명중 한사람은 조선인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료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 총수가 약 691,500명중에 70,000명이 조선인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히로시마에서 피폭으로 사망한 159,289명중에 약 30,000명이 조선인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히로시마에서 피폭으로 인한 사망은 열 명중 두 명은 조선인이라는 것입니다.





    ♦ 피폭자수와 조선인의 피해상황
    被害者数.JPG


    Q. 원폭투하직후의 한반도출신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 이였나요?

    A. 피폭직후에 피폭현장에서 피난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약6%에 불과하고 89%의 사람들은 잔류방사선이 가득 찬 피폭지에 남겨졌습니다. 합천에서 건너 온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일본어를 모르고 또는 일본인으로부터 차별을 받았다는 이유로 입지조건이 나쁜 폐쇄적 조선인촌락을 형성해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피폭 후 피난한 친척이나 지인이 히로시마시의 외곽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Q. 귀국 후 한국피폭자들은 어떤 생활은 하였는지요?

    A. 조국에 돌아와서도 많은 사람은 고향에 돌아갈 집도 농사지을 논밭도 없었습니다. 살기위해 친척들 집에 얹혀서 또는 움막집을 지어 그것도 안 되는 사람들은 다리 밑의 반공호안에서 비바람을 피하며 일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농가의 일을 거들고 일용직이나 행상으로 하루벌이를 했습니다. 그것도 안 되면 들풀이나 나무껍질, 나무뿌리 등을 먹거나 구걸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참혹한 생활에서 원폭으로 상처 입은 몸을 치유할 수 없었고 건강했던 사람도 원폭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의사에게 보이고 싶어도 치료비가 없고 약초나 민간요법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의사에게 보인다 해도 피폭자 자신이 원폭에 맞은 사실을 모르고 원폭증과 그 치료에 관해 아는 의사도 한국에는 전무했습니다.


    Q. 한국피폭자는 현재 몇 명 정도인지요?

    A. 한국원폭피폭자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생존 피해자, 다시 말해 한국피폭자 가운데
    피폭자라고 말한 사람의 수는 2010년 9월 말 시점으로 총 2,639명입니다. 또 피폭 후 조국으로 귀국한 사람들의 숫자에 관해서는 23,000명이 한국에 2,000명이 북한에 귀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Q. 합천에는 현재 한국피폭자가 몇 명 정도 계시는지요?

    A. 2010년 9월 말 시점으로 합천군에 살고 있는 피폭자(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회원)는 633명입니다. 다만, 협회에서는 등록자수의 반, 아니 3분의2는 합천출신이 아닐까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 한국원폭피폭자 협회등록자수
    number(1998).JPG

    (『한국원폭피해자의 실태』1978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회보』창간호.1999년)

    2010년 9월 말 현재
    서울지부;568명 기호;36명 경북지부;468명 합천지부;633
    부산지부;657명 경남지부;244명 호남지부;33명
    합계;2,639명


    Q. 합천의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는 얼마 정도의 분들이 주거하고 계시는지요?

    A. 약110명의 한국피폭자들이 계십니다. 대부분이 보살필 사람이 없는 분들입니다. 평균연령은 77세를 넘고 있습니다. 130명의 분들이 입소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2010년 7월)


    Q. 전후한국과 일본정부가 전후보상에 관해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에는 한국피폭자
    의 문제는 건의되지 않았나요?

    A. 1965년에 한일기본조약체결 직후에 한국피폭자의 상황을 처음으로 일본에 알리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 피폭자들은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이라 기대했으나 한일기본조약의 내용에는 피폭자의 보상에 관한 항목은 없어 한국피폭자들은 대단히 낙담 했습니다. 그래서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한국피폭자협회를 설립해 조직적으로 일본과 한국정부에 건의 하게 되었습니다.


    Q. 한국정부의 한국피폭자에 대한 원조는 없는지요?

    A. 1987년4월부터 한국내의 피폭자치료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대한 적십자병원을 지정병원으로 협회등록회원의 치료에 임한다. 치료비에는 의료보험점수를 적용해서 그중 1할을 본인부담으로 9할을 국고 부담으로 해서 한 사람당 국고부담액은 60만원(5만 엔 정도)로 초과분은 본인부담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원폭치료법에 따른 무료치료제도랑 비교하면 본인부담이 있고 국고부담에도 제한이 있고 지정병원도 상당히 적어 피폭자에 대한 이해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사가 없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 있어 불충분 한 점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의 운영비 A한국원폭피해자협회의 회원피폭자에 대한 의료보조비용액 10만원지급 B한국원폭피해자협회의 회원에 대한 의료비의 일부지급을 행하고 있습니다.


    Q. 전후 일본정부로부터는 한국피폭자에 대한 보상은 없었나요?

    A. 1990년 한일정상회담에서 가이후[海部] 정권에서 인도적 의료지원금 40억 엔이 지급되었습니다. 단, 일본피폭자의 예산이 1년간에 130억 엔과 비교할 때 너무나 적은 금액에 한국피폭자들은 이일로도 상당히 낙담 하였습니다. 또 사용용도에 관해서도 「치료비, 건강진단, 센터 건설비」등의 특정한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 무료치료 (보험진료에 따른 의료비의 개인 부담 분을 지급)
    A 1년에 한 번의 건강진단.
    B 한 사람당 월 10만원의 진료보조비 지급.
    C 장례비 한 사람당 150만원.
    D합천 원폭피해자 복지회관 건설
    그러나 , 한국은 보험진료의 적용범위가 작고 또 대응할 수 있는 병원의 수도 적어 일단은 본인부담을 짊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Q. 피폭자 수첩이란 무엇입니까?

    A. 원폭투하로부터 12년이 지난 1957년에 「원자폭탄피해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원폭의료법) 이 제정되어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피해자라고 인정되면 「피폭자 건강 수첩」이 교부되고 국비부담으로 건강진단과 원폭증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 후, 1968년에 「원자폭탄 피해자의 특별조치에 관한 법률」(원폭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건강관리수당이 지급되게 되었습니다. 그 후 , 여러가지 법 개정을 거쳐서 1995년에 이 둘의 법을 하나로 묶어 「원자폭탄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률」(피폭자 원호법)이 실시되었습니다. 피폭자 수첩을 가지게 되면 피폭자 원호 법에 의해 피폭자 분들의 치료비가 전액 무료가 되고 생활지원으로 수당 등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단, 현재 재외 피폭자에 대해서는 그 내용에는 일본의 피폭자들과 비교할 때 제한이 있습니다.


    Q. 한국피폭자들은 피폭자수첩을 받을 수 있는지요?

    A. 한국피폭자의 피폭자수첩의 취득을 두고 한국피폭자와 일본정부 사이에 재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978년에 손진두[孫振斗]씨의 재판에서 수첩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일본에 체재하는 동안만 피폭자 원호를 위한 법률이 적용되어 한국에 귀국하면 수첩은 효력을 상실한다는 한정적인 것 이였습니다. 그 재판으로부터 20년 후인 1999년 곽귀훈[郭貴勳]씨가 한국에서도 적용 될 수 있도록 재판을 하였습니다. 결과, 2002년 곽씨가 2심에서 승소하고 또 일본도 인도적인 견지에서 항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단, 이때에도 한국피폭자들은 수첩을 교부 받기 위해 일본에 가는 것이 조건 이였습니다. 2008년 12월부터 한국의 일본대사관, 일본영사관에서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피폭자 수첩 취득으로 받는 지원은 현재 일본의 피폭자와 한국피폭자간에 차이가 있나요?

    A. 피폭자 수첩을 취득하면 일본에서는 매년 2회의 건강진단을 무료로 실시하고 매달 병원에 관련된 수당으로 (의료 특별수당, 특별수당, 건강관리수당, 보험수당, 소두증[小頭症]수당의 어느 것 한 종류)와 간호수당이 지급되어 의료비가 무료가 되며 사망 시에는 장례비가 지급됩니다. 한국피폭자를 포함한 재외 피폭자분들은 병원에 관련된 수당과 장례비는 지급 되고 있지만 무료건강진단은 받을 수 없고 의료비의 지급액의 상한선도 1년 간 16만 엔으로 제한되어 있어 간호수당도 없습니다.


    Q. 현재 한국의 피폭자 전원이 수첩을 취득 할 수 있는지요?

    A. 일본에 건너갈 필요가 없어지고 수첩의 취득은 쉬워졌습니다만 수첩을 취득하려면 원폭피폭의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증인과 입증할 증거물이 필요해서 전후 65년 지난 지금 증명 할 수 없어 수첩을 취득 하지 못한 한국피폭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Q. 그 외에 한국피폭자들에 관한 문제는 있는지요?

    A.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원폭증 인정의 문제입니다. 암등 큰 병을 앓고 있는 경우, 제한된 의료비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원폭증인정이 되면 매달 약14만 엔의 수당이 있어 의료비의 부담이 적어집니다. 2010년 4월부터 일본대사관에서 원폭증 인정의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경우 암과 피폭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의사의 소견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진단서를 정확하게 쓸 의사가 없으므로 일본의 전문적인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병든 몸을 이끌고 자비로 일본에 건너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신청이 받아 들여졌다 해도 수당이 지급되는 것은 약 1년 반 후가 됩니다.


    posted by キャンドルナイトワンピース実行委員会 at 16:45| Comment(0) | 奮闘記 | このブログの読者になる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Kackey@dabigtree主催 採火式 大阪 スタジオSANA

    先週土曜日はお昼から玉造にあるスタジオSANAにて採火式を開いた。

    福岡県の星野村にある原爆の残り火"平和の火"。

    初めて出会ったのは去年の六月。
    今年の六月も夏至の日に平和の火を使ってキャンドルナイトを開いた。

    今回はヒロシマで被爆した方が多く住む韓国のハプチョンを経由して大阪へ。

    ヒロシマで被爆した約1/10が朝鮮からやってきた人たち。
    との話を今年になって初めて聞いた。


    韓国へ一緒に行った、タケちゃん、深尾さん、みなこちゃんも来てくれ再度ハプチョンに行った時の動画を観ながら向こうで聞いた事、感じた事をシェア。

    再度今回の旅を反芻して整理する機会となった。


    火を受け取られた加藤さん。
    身内だけでゆっくりとキャンドルナイトをしますとのこと。

    平和の火を使ったキャンドルナイトは、星野村の下記6つの条例を守る必要がある。

    ・ピースステーションの採火セレモニーに参加する。
    ・申請しているキャンドルナイト以外に「平和の火」を使用しない。
    ・申請している人や組織以外に火を分けない。
    ・採火を受けてから、キャンドルナイトまで平和の火は心を込めて大切に保管する。
    ・キャンドルナイトの際、平和の火の由来、主旨等を自分の言葉で伝える。
    ・キャンドルナイト終了時には、必ず全ての火を消す。

    これらの事を守れば、不特定多数の人が参加する開かれたキャンドルナイトをやるも良し、また個人的に1人でやろうと2人でやろうと家族だけでやろうとその人の自由だ。



    在韓被爆者問題。
    極めてデリケートでシリアスな事なので、勉強不足の自分が、過去の経緯や数字を伝えるのは難しい。

    風化していく過去を誰かに正確に伝えるのは難しい。


    今回の旅ではこれを痛感。


    その情報のソースは二次的なものか三次的なものか、何処から発信されたのか。

    何を以って正確とするか。


    難しい。

    そして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己の主観や思い込みが入る。

    が、諦めるわけにはいかない。


    しぶとく勉強。


    被爆一世の人たちはもう時間が残されていない。

    故に朝鮮半島が緊張状態にある中この旅を決行した。

    "今しかない"。

    というより"今だからこそ"。


    今月、このハプチョン経由の平和の火は韓国、日本各地でいろんなキャンドルナイトて灯されている。


    より多くの人の気づきのきっかけになりますように。


    何より私自身が知りたい。


    Vo&Djembe:Kackey@dabigtree


    在韓被爆に関するQ&A | Candle Night 1 Pi:ce
    http://www.1pi-ce.jp/ja/news/qa_1.html
    posted by キャンドルナイトワンピース実行委員会 at 11:58| Comment(0) | 奮闘記 | このブログの読者になる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キャンドルナイトinごパン・米市

    今日(昨日)はやっぱり行っちゃいました!
    六甲ごパンさん!!

    CIMG0324.JPG

    CIMG0319.JPG

    釣ちゃんが、本当に素敵な紙芝居を用意してくれていました。
    暖かくってステキ!!
    みんなのフラや歌も、とっても温かくって。
    みんなの平和を祈る気持ちがとても幸せでありがたく感じる時間でした。

    釣ちゃん、ありがとう〜〜!



    そして、
    昨日の米市でのキャンドルナイト。
    桜井武司さんと洋平君とのディジリドゥのセッション。

    CIMG0300.JPG

    いやあ、幻想的で凄かったです!
    体の内側からマッサージしてもらったようね感じです。
    地球の鼓動を感じました。

    洋平君、さんきゅ〜!!
    今日もどうもありがとう〜


    posted by キャンドルナイトワンピース実行委員会 at 01:51| Comment(0) | 日記 | このブログの読者になる | 更新情報をチェック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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